My Life&Mind

오쇼의 틈을 읽으며...

alignG 2010. 8. 12. 20:15

어제 카페에서 오쇼의 틈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끄적였습니다. 그것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맘에 이 블로그에 옮겨봅니다. 

 - 10점
오쇼 라즈니쉬 지음, 나혜목 옮김/큰나무

정말 행동하나 하기전에 수많은 생각들이 들어왓다 나갓다... 그 많은 생각을 이겨내면 행동을 하는 것이고 그 많은 생각들에 눌리면 지는 것이고 수 많은 변명과 합리화와 진정한 나의 의도 사이에서 끊임없는 저울질~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지나가는 구나 나는 그 생각보다 크다고 한다. 진정으로 그럴까? 생각보다 내가 크다라 그런 나는 누굴까? 어떤 수준의 나를 말하는 것일까? 어떤 곳에서는 모든 것이 나라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개체의 자신을 나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수준으로 어떤 기준으로 나눈 나인지는 모르겟지면 결국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돌아간다.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나를 안다는 것은 무었을 말하는 것일까? 

상대를 보면서 어떤미래를 어떤과거를 보면서 살아간다면 진정한 대화가 일어날수가 없다. 각자가 바라는 것을 향해 각자의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현재에 발을 디딜때에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진정한 대화를 하려면 진정으로 현실에서서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정으로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 대화가 없을때 서로는 각자의 환사속에서 서로를 인식하게 되고 오류가 나타나게 된다. 

진정한 관계를 위해서는 발가벗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 대한 환상의 뒤범벅을 보는 것이 아닌 진정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삶이란 것 자체가 +와 -사이에서 일어나는 회전체이다. 마치 모터가 +와 -가 생겨나 돌듣이 + -가 반복되면서 돌아간다. 거대한 우주에서 그리고 그에 속해있는 인간에게서일어난다. + -가 반복되며 삶이 일어난다. 

용기를 내어서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달아보기. 트위터는 덧글 비스한 개념인 Replay버튼을 눌러서 글을 쓰면 그것또한 덧글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글로서 취급되어서 노출도가 높다. 그렇게 노출도가 높다는 생각이 드니 자꾸 내가 글쓰기에 진정성이 떨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제를 하게 된다. 그것을 뛰어 넘어 사람들에게 소통을 시도해봐야겟다. 자제했던 부분들까지도. 

나는 나의 지식이 아닌 나의 내면을 드러내고 공유하고 싶다. 내가 보여주기 두려워하는 그런 모습들까지 모두다. 지식이 아닌 나 자신을 공유하고 싶다. 

트윗은 사적인 Replay가 달기가 참 뭐하다. 그것조차 다른 사람의 타임라인에 올라오기에. 나의 사적인 글들로 타인의 타임라인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다. 사적인 대화를 오가고 하다 잠시 떠오른.. 

두려움은 나의 길을 인도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내가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의미이고 두려움이 강하다는 것은 내가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 사색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사람들은 불행을 즐기고 있다. 말로는 불행에서 빠져나가고 싶어하지만.. 그 불행이 그사람의 삶을 이끌고 있기에 불행이 사라져 버리면 자신의 삶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겪을 꺼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가지려고 행위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존재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하려고 행복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복되어라. 행복하려고 행복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행복의 존재가 된뒤에 행위하고 가져라.. 그 모든 것이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의 환상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때 우리는 매순간 행복의 길을 걷게 된다. 

대화에 있어서 상대방의 말을 받아주고 그것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주기 또는 저녀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도하기. 스토리 + 질문의 조합. 그곳에 진정성이 버무려져서 롤러코스터 같은 대화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낡은것에 집착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을 막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삶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미리 정해져 있는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식에 집착하는 사람은 지식을 초월할 수 없다. 디식을 디딤돌로 가지고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식에 집착해 지식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을 제안한다. 삶은 지식의 테두리안에서 안전하게 돌아갈것이고 새로운 것없이 반복되는 듯한 삶을 마음이 경험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은 삶에서 깨어있지 않아도 굴러갈수 있도록 한다. 이미 정해진 룰이 있으므로 그대로만 행동하면 되기에 깨어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정말 행동하나 하기전에 수많은 생각들이 들어왓다 나갓다... 그 많은 생각을 이겨내면 행동을 하는 것이고 그 많은 생각들에 눌리면 지는 것이고 수 많은 변명과 합리화와 진정한 나의 의도 사이에서 끊임없는 저울질~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지나가는 구나 나는 그 생각보다 크다고 한다. 진정으로 그럴까? 생각보다 내가 크다라 그런 나는 누굴까? 어떤 수준의 나를 말하는 것일까? 어떤 곳에서는 모든 것이 나라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개체의 자신을 나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수준으로 어떤 기준으로 나눈 나인지는 모르겟지면 결국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돌아간다.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나를 안다는 것은 무었을 말하는 것일까? 

상대를 보면서 어떤미래를 어떤과거를 보면서 살아간다면 진정한 대화가 일어날수가 없다. 각자가 바라는 것을 향해 각자의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현재에 발을 디딜때에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진정한 대화를 하려면 진정으로 현실에서서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정으로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 대화가 없을때 서로는 각자의 환사속에서 서로를 인식하게 되고 오류가 나타나게 된다. 

진정한 관계를 위해서는 발가벗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 대한 환상의 뒤범벅을 보는 것이 아닌 진정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삶이란 것 자체가 +와 -사이에서 일어나는 회전체이다. 마치 모터가 +와 -가 생겨나 돌듣이 + -가 반복되면서 돌아간다. 거대한 우주에서 그리고 그에 속해있는 인간에게서일어난다. + -가 반복되며 삶이 일어난다. 

용기를 내어서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달아보기. 트위터는 덧글 비스한 개념인 Replay버튼을 눌러서 글을 쓰면 그것또한 덧글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글로서 취급되어서 노출도가 높다. 그렇게 노출도가 높다는 생각이 드니 자꾸 내가 글쓰기에 진정성이 떨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제를 하게 된다. 그것을 뛰어 넘어 사람들에게 소통을 시도해봐야겟다. 자제했던 부분들까지도. 

나는 나의 지식이 아닌 나의 내면을 드러내고 공유하고 싶다. 내가 보여주기 두려워하는 그런 모습들까지 모두다. 지식이 아닌 나 자신을 공유하고 싶다. 

트윗은 사적인 Replay가 달기가 참 뭐하다. 그것조차 다른 사람의 타임라인에 올라오기에. 나의 사적인 글들로 타인의 타임라인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다. 사적인 대화를 오가고 하다 잠시 떠오른.. 

두려움은 나의 길을 인도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내가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의미이고 두려움이 강하다는 것은 내가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 사색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사람들은 불행을 즐기고 있다. 말로는 불행에서 빠져나가고 싶어하지만.. 그 불행이 그사람의 삶을 이끌고 있기에 불행이 사라져 버리면 자신의 삶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겪을 꺼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가지려고 행위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존재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하려고 행복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복되어라. 행복하려고 행복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행복의 존재가 된뒤에 행위하고 가져라.. 그 모든 것이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의 환상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때 우리는 매순간 행복의 길을 걷게 된다. 

대화에 있어서 상대방의 말을 받아주고 그것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주기 또는 저녀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도하기. 스토리 + 질문의 조합. 그곳에 진정성이 버무려져서 롤러코스터 같은 대화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낡은것에 집착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을 막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삶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미리 정해져 있는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식에 집착하는 사람은 지식을 초월할 수 없다. 디식을 디딤돌로 가지고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식에 집착해 지식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을 제안한다. 삶은 지식의 테두리안에서 안전하게 돌아갈것이고 새로운 것없이 반복되는 듯한 삶을 마음이 경험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은 삶에서 깨어있지 않아도 굴러갈수 있도록 한다. 이미 정해진 룰이 있으므로 그대로만 행동하면 되기에 깨어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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